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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가 거래하는 시대: 미 의회의 SEC 질의와 '에이전틱 웹' 규제의 서막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단순히 정보를 요약하거나 검색하는 도우미 역할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온체인 지갑을 생성하고, 유동성을 배치하며, 가상자산을 직접 거래하는 '에이전틱 웹(Agentic Web)' 생태계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현실 금융과 맞닿기 시작하면서 규제당국의 시선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근 미국 하원 민주당 의원들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I 에이전트의 소매 금융 거래 감독 방안에 관한 13가지 구체적인 질의 서한을 보낸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오는 7월 31일까지 답변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술 조사를 넘어섭니다. 자율형 에이전트 기반의 금융 활동이 제도권의 감시망, 즉 '규제 테두리(Regulatory Perimeter)' 안으로 본격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험실 안의 장난감에 머물던 AI 에이전트가 실제 금융 질서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파장과, 앞으로 온체인 생태계와 개발자들이 직면하게 될 규제적 이정표를 짚어보겠습니다.
미 의회의 13가지 질의: 규제당국이 주목하는 리스크
이번 하원 민주당 의원들이 SEC에 보낸 서한은 단순한 서면 질의 이상입니다. AI 에이전트가 금융 시장, 특히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 시장에서 자율적인 거래 주체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규제 공백을 선제적으로 메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죠. 의회가 제시한 7월 31일이라는 타임라인은 생각보다 촉박하며, 질의의 핵심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 소매 투자자 보호와 정보 비대칭성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AI 에이전트를 사용할 때 알고리즘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는지, 혹은 개발사나 서비스 제공업체가 불투명한 수수료 구조나 자율 거래 설정으로 사용자를 기만할 소지가 없는지 짚고 있습니다. 시스템 오작동이나 예기치 못한 시장 상황에서 자산이 강제로 매도되는 등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매 투자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대한 규정 마련 여부를 묻고 있죠.
둘째, 시장 건전성과 시스템적 교란 리스크입니다.
유사한 알고리즘이나 대형 언어 모델(LLM)을 탑재한 수천 개의 AI 에이전트가 특정 트리거에 맞춰 일시에 포지션을 정리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순간적인 유동성 고갈이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같은 가격 왜곡 현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의회는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의 집단적 거래가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 교란에 대해 SEC의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가 준비되어 있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셋째, 가장 복잡한 영역인 '책임 소재(Liability)'의 정의입니다.
AI 에이전트가 내린 자율적 판단으로 인해 심각한 자산 손실이 나거나 시장 규정을 위반하는 거래가 실행되었다면 법적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까요? 핵심 알고리즘을 설계한 개발자일까요, 서비스를 배포한 플랫폼 사업자일까요, 아니면 에이전트 작동 단추를 누른 투자자 개인일까요? 이 법적 공백 영역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정 가능성을 강하게 묻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자율형 에이전트 인프라가 실질적인 경제 행위를 시작한 단계입니다. 이번 미 의회의 서한은 AI 에이전트가 몰고 올 '에이전틱 웹' 트렌드가 더 이상 규제 당국의 감시망 밖에서 흘러가는 기술 실험에 머물 수 없음을 명확히 상기시킵니다.
에이전틱 웹과 금융 프리미티브의 충돌
이미 온체인 생태계는 자율적인 AI 에이전트들이 활약하는 무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디파이(DeFi) 프로토콜에서 스스로 유동성을 재배치하고, 차익거래 기회를 포착해 즉각적으로 트랜잭션을 실행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여기에 토큰 게이팅(Token-gating) 구조나 에이전트 전용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독자적인 '경제적 주체'로 자리 잡는 중입니다.
문제는 이 '에이전틱 웹(Agentic Web)'의 기본 전제가 전통 금융 규제의 근간인 신원 확인(KYC) 및 자금세탁방지(AML) 규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규제는 모두 '자산의 실소유주가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온체인 에이전트의 경우는 어떨까요? 에이전트를 개발한 개발자일까요, 에이전트 구동을 위해 토큰을 스테이킹한 거버넌스 참여자들일까요, 아니면 지갑 키를 직접 제어하며 트랜잭션을 일으키는 에이전트 그 자체일까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온체인 AI 프로토콜들은 규제당국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각국 정부가 가상자산 추적 및 온체인 포렌식 예산을 크게 늘리는 흐름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올해 가상자산 범죄 및 탈세 대응을 위한 조달 예산으로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며 감시망을 좁히고 있는 것처럼, 규제당국의 온체인 모니터링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익명성 뒤에 숨은 에이전트의 자율적 자금 이동 역시 분석 필터링을 피해 가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결국 향후 온체인 AI 프로젝트들의 생존 공식은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규제 대응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토큰 게이팅 기반의 에이전트 네트워크들도 단순히 기능적 유틸리티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분산 ID(DID)나 영지식증명(ZK) 기반의 규제 준수 프레임워크를 어떻게 결합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주시해야 할 규제 마일스톤
미 의회가 제시한 7월 31일이라는 데드라인은 단순한 서면 답변 기한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SEC의 공식 답변은 온체인 AI 에이전트 생태계가 마주할 첫 번째 법적 가이드라인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장 참여자들은 기술적 내러티브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닙니다. 개발팀이 규제 리스크를 어떻게 우회하거나 준수할 것인지, 특히 신원 확인(KYC/AML)과 법적 책임 소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냉정하게 검증해야 할 시점입니다.
자율 거래 에이전트가 현실 금융의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마찰음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에이전틱 웹의 실질적인 확장성은 혁신적인 코드 한 줄이 아니라, 결국 이 규제의 경계를 얼마나 지혜롭게 넘어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