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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자주포, 스페인도 뚫었다… 소송 장벽 넘어선 '현지 공동 생산'의 비밀
한국 방산의 대표 주자 K9 자주포가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서유럽 나토(NATO) 시장의 빗장마저 열어젖혔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26년 8월 31일 스페인 국영 방산기업 인드라 시스테마스(Indra Sistemas)와 수출 실행 계약을 공시하면서, 스페인은 K9 자주포를 도입하는 11번째 국가이자 첫 서유럽 무대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을 넘어, 까다로운 현지 규제와 경쟁사의 집요한 소송 장벽까지 모두 뚫어내고 거둔 결실의 내막을 짚어봅니다.
소송전에 묶여있던 11조 원대 사업, 어떻게 풀렸나
스페인 영토에 K9 자주포의 깃발을 꽂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무대 뒤편에서는 스페인 방산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법적 공방과 다국적 방산 기업 간의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갈등의 발단은 지난 202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계 방산업체 제너럴 다이내믹스 유럽 지상체계(GDELS)의 스페인 자회사인 산타 바르바라 시스테마스(Santa Bárbara Sistemas)가 스페인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들은 스페인 육군의 포병 현대화 사업에서 인드라 시스테마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불복해 입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전체 규모가 최대 45억 5,0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7조 7,000억 원에서 11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격렬한 법적 대립의 한복판에는 유럽연합과 나토가 목소리를 높여온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핵심 제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무기를 단순히 수입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국 내 생산 기반과 핵심 기술을 직접 확보해야 한다는 방침입니다. 스페인 정부 역시 K9 플랫폼이라는 한국의 우수한 하드웨어를 도입하되, 인드라 시스테마스의 사격 통제 시스템 등 현지 기술력을 결합해 안방에서 직접 생산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스페인 내에서 전통적인 국방 사업을 도맡아왔던 산타 바르바라 시스테마스 입장에서는 자국 시장의 주도권을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강력한 소송전으로 맞불을 놓은 것입니다.
수개월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발목을 잡았던 이 사법 리스크는 2026년 6월과 7월에 이르러 극적인 돌파구를 맞이했습니다. 스페인 법원이 산타 바르바라 시스테마스가 제기한 상소를 잇따라 최종 기각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스페인 정부와 인드라 시스테마스는 소송 제기국이자 현지 경쟁사인 산타 바르바라 시스테마스를 공동 산업 프레임워크 파트너로 포용하며 극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스페인 진출을 가로막던 최대 걸림돌이 완전히 걷히며 역사적인 수출 전선에 마침내 파란불이 켜졌습니다.
'단순 판매' 아닌 '기술 이전'… 현지 공동 생산을 택한 이유
이번 계약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무기를 완제품 형태로 수출하던 기존 방식을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대신 핵심 기술을 스페인에 전수하고 현지에서 직접 무기를 만들게 하는 '기술 이전 및 현지 공동 생산'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우회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전략적 자율성' 규제 때문입니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역내 방산 역량을 강화해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위기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무기 생산과 정비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유럽의 핵심 안보 기조입니다. 단순히 외국산 완제품을 사 오기만 하는 수입 방식으로는 이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유럽 시장의 철벽 같은 빗장을 열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맞춤형 답안지를 제시한 것입니다.
지난 3월 체결된 기본 합의서의 구조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핵심 K9 플랫폼 기술을 장기 라이선스 방식으로 제공합니다. 대신 현지 파트너인 인드라 시스테마스가 독자적인 사격 통제 시스템과 명령 제어 소프트웨어를 직접 통합하는 설계 권한을 갖습니다. 자주포의 차체 제작과 최종 조립 역시 스페인 북부 히혼에 위치한 인드라의 생산 시설에서 현지 인력과 부품을 활용해 진행됩니다.
경영상 비밀 유지 조항으로 인해 이번 최종 실행 계약의 구체적인 수량과 계약고는 공식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난 3월 기본 합의서에서 조율되었던 128대의 자주포와 120대의 K10 탄약운반차 규모를 바탕으로 이번 계약의 규모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핵심 기술은 아낌없이 나누되 생산 주도권을 현지에 넘겨주는 영리한 절충안이 경쟁사들의 거센 법적 견제 속에서도 스페인 정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결정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콧대 높은 서유럽 방산 시장을 뚫어낸 이정표
스페인 시장 진입은 단순히 수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넘어섭니다. 한국 방산의 주력 무기인 K9 자주포가 마침내 서유럽 영토에 공식적으로 발을 디뎠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K9 자주포는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등 주로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왔습니다. 방산 규제 문턱이 유독 높고 자체 방위산업 기반이 탄탄해 외국산 무기 도입에 보수적인 서유럽 핵심 나토 회원국이 K9을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계약이 지닌 진짜 가치는 K9의 성능과 호환성이 서유럽의 엄격한 표준에서도 완벽하게 통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자체 방산 제조 능력을 고집하는 서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기술 이전이라는 맞춤형 카드가 제대로 먹혀 들어갔음을 보여줍니다. K9 자주포가 나토의 정교한 지휘통제 시스템과 자연스럽게 연동될 수 있다는 점을 실전 배치 국가인 스페인을 통해 보여준 셈입니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번 스페인 수출이 향후 포병 전력 현대화를 고민 중인 다른 서유럽 국가들을 자극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성비와 성능은 물론, 까다로운 유럽 규제까지 맞춤형으로 맞춰준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서유럽 시장 진입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뜨린 이번 성과는 K9 자주포가 유럽 방산 시장의 진정한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계약 이행과 남은 과제
이제 시장의 시선은 도장을 찍은 계약서 너머, 실제 이행 과정과 남은 과제로 향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계약 체결 즉시 전체 계약 금액의 20%를 선급금으로 수령하고, 2026년 말까지 추가로 5%를 지급받을 예정입니다. 영업 기밀 조항 때문에 구체적인 계약 규모와 도입 수량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의 2.5% 이상이라는 공시 의무 기준을 바탕으로 추산해 보면 이번 계약고는 최소 6,675억 원 규모에 이르는 대형 계약으로 분석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진짜 관건은 스페인 북부 히혼(Gijón)에 구축될 현지 생산 라인의 안착 여부입니다. 단순 부품 조립을 넘어 핵심 기술을 전수하고 스페인 인드라가 자체 통제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결합해 현지에서 직접 차체를 생산하는 방식인 만큼, 초기 공정 구축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운영상의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지에서 생산된 자주포의 품질을 한국산 원제품 수준으로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번 스페인 현지 공동 생산 모델의 성공은 향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기술 이전 기반의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카드를 확보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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